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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왜 미국·중국·일본에 밀리고 있을까?

한국의 반도체와 이차전지 산업이 점점 더 힘겨운 경쟁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경쟁국들이 자국의 기업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며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사이, 한국은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며 직접적인 지원을 꺼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왜 한국의 첨단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 걸까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미국, 중국, 일본의 적극적인 반도체 지원 정책

미국, 중국, 일본은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의 지원은 단순한 기업 보조금 지급을 넘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종합적인 전략으로 이뤄지고 있는데요.

미국: ‘칩스법’으로 국가 안보와 기술력 강화

미국은 2022년 ‘칩스법'(CHIPS Act)을 발효하며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국가안보는 반도체 산업에 달려있다”며 반도체 생산을 자국 내로 이전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인텔(Intel)에 85억 달러의 보조금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하며,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던 반도체 생산을 미국 내에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미국은 또한 반도체 수출통제를 강화하여 중국의 기술 발전을 견제하는 동시에, 자국 내 반도체 기업들이 더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히 기업의 성장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한 전략적 투자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2023년부터 자국 대표 반도체 기업인 SMIC에 약 2억7천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정부가 대주주로 참여하여 연구개발(R&D) 및 기술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중국이 기술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의 수출 규제로부터 독립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 결과 중국은 자체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일본: 라피더스 설립으로 반도체 부흥에 도전

일본은 반도체 산업의 재부흥을 위해 라피더스(Rapidus)라는 연합 반도체 기업을 설립하고, 여기에 약 63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소니, 소프트뱅크, 키옥시아 등 일본 주요 기업들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일본 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 전반을 강화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또한 반도체 관련 연구개발에 추가적인 지원을 검토하고 있으며, 자국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폭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반도체 산업의 기술력을 높여 일본 경제에 장기적인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차전지 산업, 점유율 하락의 원인은?

이차전지(배터리) 산업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국내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은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중국, 일본이 각각의 전략을 통해 자국 배터리 산업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전기차 보조금 정책으로 자국 생산 유도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전기차 보조금을 앞세워 자국 내 이차전지 생산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 부품의 50% 이상이 북미 지역에서 생산·조립된 경우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건을 걸어, 이차전지 업체들이 미국 내 공장 건설을 고려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배터리 제조사들이 미국 현지에 생산 시설을 구축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CATL과 LG에너지솔루션 등은 이미 미국 내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거나 계획을 발표한 상태입니다. 이는 단순히 배터리 생산량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 내 전기차 산업의 밸류체인을 강화하여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는 전략의 일환입니다.

중국: 선두주자인 CATL에 전폭적 지원

중국은 1990년대부터 이차전지 산업에 대한 지원을 예고하고, 꾸준히 전략적인 투자를 이어왔습니다. 그 결과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에서 CATL이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선두주자로 나서게 되었죠. 중국 정부는 설립 초기부터 CATL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최근에는 보조금 지급 범위를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원은 중국의 배터리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도록 도왔으며, CATL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중국은 앞으로도 기술력 향상에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가며, 자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일본: 도요타를 중심으로 배터리 산업 강화

일본 역시 이차전지 산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도요타에 약 8억5천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하며 이차전지 연구개발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내 이차전지 생산시설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일본 경제산업성은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추가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한국의 대응과 한계, 그리고 개선 방향

한국은 반도체와 이차전지 산업에서 여전히 간접적인 지원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세액공제와 같은 정책을 통해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이 보조금을 포함한 직접적인 지원으로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정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입니다.

직접 환급 제도의 필요성

전문가들은 한국도 직접적인 보조금 지급이 가능한 ‘직접환급’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수 부족 문제로 인해 직접적인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기업들이 납부할 세금보다 공제액이 클 경우 현금으로 차액을 지급하는 직접환급 제도를 통해 기업의 현금 유동성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컨트롤 타워의 강화

또한, 반도체와 이차전지 산업을 아우를 수 있는 강력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합니다. 미국, 중국, 일본은 이미 각국의 경제안보를 담당하는 조직을 강화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산업 전략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유관 부처별로 정책이 분산되어 있어, 효율적인 대책 마련에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올해 2월 ‘국가전략기술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여전히 부처 간의 조율과 법적 기준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향후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산업 정책을 총괄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통합적인 조직체계가 필요합니다.

결론: 더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첨단산업에 대한 글로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이러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기업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국가의 미래 산업을 위한 전략적 결정입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는 지금, 한국은 반도체와 이차전지 산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이 필요하며,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이 요구됩니다. 한국의 첨단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다시금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