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 위치한 대기업 본사의 지하 구내식당. 평범한 화요일 낮 12시, 지하 식당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은 직원들로 가득 찼습니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차돌 된장찌개’. 그저 그런 일상적인 메뉴 같지만, 여기는 입구에서부터 길게 줄이 늘어설 정도로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배식대 앞에는 식사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50여 개의 테이블은 이미 만석입니다. “밖에서 먹으면 1인분에 1만 원이 훌쩍 넘는데, 여기는 5,500원이니까 엄청난 가성비죠.” 직원 A씨는 이렇게 말하며, 밖에서 식사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구내식당을 선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대기업 구내식당은 그야말로 ‘불황 속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회사의 약 500명의 직원 중, 절반에 가까운 200명이 매일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한다고 합니다. 삼계탕이나 스테이크 같은 ‘특식’이 나오는 날엔, 구내식당을 찾는 인원이 300명을 넘어섭니다. 인원수가 많다 보니 회사는 점심 시간을 두 타임으로 나누는 ‘2부제’를 도입해 혼잡을 막고자 할 정도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근처의 일반 식당들은 손님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한 닭 요리집은 30개의 테이블 중 단 2개의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고, 그마저도 혼자 식사하는 직장인들이었습니다. 식당 주인은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장사가 코로나 때보다도 더 안 된다”며,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손님은 점점 줄어드니 버티기가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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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의 승자, ‘구내식당’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표한 ‘외식산업 경기동향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외식업 전반의 체감 경기가 1년 전보다 악화된 반면, 구내식당만은 예외적인 성장을 보였습니다. aT가 전국 외식업체 3,000곳을 대상으로 2024년 3분기 전망을 조사한 결과, 구내식당의 경기 전망치는 평균 98.67로 작년 3분기 97.32보다 소폭 상승했습니다. 이 전망치가 높을수록 많은 업체가 “앞으로 장사가 더 잘될 것 같다”고 기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구내식당은 해당 회사와 장기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아, 불경기와 물가 상승의 영향을 덜 받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안정성은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에게도 큰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영갑 aT 유통교육원 연구자문위원은 “직장인들의 지갑이 얇아질수록 구내식당의 가성비가 더욱 부각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외부 식당의 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내식당이 인기를 끄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반면, 구내식당을 제외한 다른 외식업종의 전망치는 모두 하락했습니다. 한식 음식점은 3분기 전망치가 81.48로 1년 전보다 5.04포인트 하락했으며, 일식, 중식, 양식 등의 외국식 음식점 역시 1.64포인트 감소했습니다. 호프집이나 치킨점 같은 주점업, 간이음식점, 카페 등 비(非)알코올 음료 업종도 모두 전망치가 떨어져 외식업계의 전반적인 체감 경기는 악화된 상황입니다.
외식업 불황의 깊어지는 터널
현재 한국 외식업계는 심각한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고물가와 고금리의 영향으로 소비자들이 외식에 쓰는 돈을 아끼기 시작하면서, 많은 음식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폐업하는 음식점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음식점 폐업 건수는 15만 2,520건으로, 전년 대비 16%나 증가했습니다. 이는 외식업계 전체의 폐업 증가율인 13.9%보다 높은 수치로, 다른 업종에 비해 특히 외식업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022년에도 음식점 폐업 건수는 전년 대비 6% 증가했는데, 불과 1년 만에 폐업 증가율이 10% 가까이 높아진 것입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식재료 가격이 폭등하면서 음식점 운영비가 크게 올랐지만, 손님이 줄어들어 수익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며, 현재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더 많은 음식점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다”고 덧붙였습니다.
구내식당의 인기, 과연 긍정적일까?
많은 직장인들이 구내식당을 선호하면서, 외식업계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구내식당의 저렴한 가격과 질 좋은 식단은 직장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주변 식당들에게는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들이 직원 복지를 위해 운영하는 구내식당은 단순히 밥을 먹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이 편리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고,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의 건강을 챙기는 역할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구내식당이 외식업계 전반의 불황을 가속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는 점은 한편으로는 씁쓸한 현실입니다.
또한, 구내식당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외식업계는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기업들이 구내식당을 더욱 확장하거나, 더 많은 직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규모를 늘리면 주변 식당들의 고객은 더 줄어들게 됩니다. 구내식당과 외부 식당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식당 폐업, 내일이 될지 모른다”
서울 시내에서 10년째 국밥집을 운영 중인 50대 사장 B씨는 요즘 같은 상황이 처음이라고 말합니다. “코로나 때도 힘들었지만, 그때는 그래도 배달이나 포장으로 어떻게든 버텼어요. 그런데 요즘은 배달도 줄고, 찾아오는 손님도 줄어서 정말 이러다 문을 닫아야 하나 싶습니다.”
B씨는 지난달 식재료 값이 30% 이상 올랐다고 합니다. 돼지고기, 쌀, 야채 등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가격이 뛰었지만, 손님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가격을 쉽게 올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래도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하니까, 내 월급은 거의 못 가져간다고 보면 됩니다”라고 말하며, 현재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호소했습니다.
구내식당과 외식업의 공존, 해법은 없을까?
구내식당이 직장인들의 ‘최애 점심 장소’로 자리 잡으면서, 외식업계는 이와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기존의 맛집들이나 개인 식당들이 차별화된 메뉴와 서비스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또, 회사와 외식업계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서로의 고객층을 나눌 수 있는 협력 모델을 제안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현재의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외식업계는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외식업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정부와 기업, 그리고 외식업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