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숨어 산 의인, 5·18 시민군 돕다 징역형…명예 회복 절실
억울한 옥살이, 45년의 숨죽인 삶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 방송을 듣고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김충열(68) 씨의 기구한 삶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당시 군법정에서 증인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억울한 판결을 받았고, 이로 인해 평생을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그는 "징역을 어쩌고 살았는지 판결문도 못 보고, 45년이라는 세월을 살았습니다."라며 당시의 고통을 토로했습니다. 사복 경찰의 감시를 피해 부산에서만 10년간 8번의 이사를 다녀야 했던 그의 삶은 5·18의 아픔과 깊이 얽혀 있습니다.

시민군 돕다 겪은 고초와 후유증
김 씨는 5·18 시민군들이 시종면에 왔을 때, 그들이 배고파하는 것을 보고 음식을 사주며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그는 경찰에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평생 다리를 절고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당시 군사법정에서 항소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라디오를 통해 북한 방송을 들은 사실도, 북한을 좋게 평가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았습니다." 그의 증언은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명예 회복을 향한 30년의 기다림
출소 후에도 김 씨는 5·18과의 연관성 때문에 힘든 삶을 이어갔습니다. 5·18 보상법 제정 후 보상을 신청하려 했으나 판결문을 발급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30년이 지난 2023년, 광주시로부터 보상 신청 안내 문자를 받고 처음으로 자신의 판결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 마음을 돌, 별, 해만 알아주고 사람은 안 알아줬는디, 인재는 뭣이 왔는갑다."라며 뒤늦게나마 명예 회복의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눈물, 자녀를 위한 명예 회복
김 씨의 아내는 남편의 억울한 옥살이 때문에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해가 갈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제 김 씨는 자신을 믿어준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명예 회복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최근 5·18 민주유공자 증서를 받고 재심을 신청한 김 씨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진실은 45년 만에, 명예 회복은 현재 진행형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45년간 숨어 지낸 김충열 씨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시민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고 후유증에 시달렸지만, 이제는 명예 회복을 위해 재심을 신청하며 희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용기 있는 행보가 우리 사회에 정의와 진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김충열 씨에 대해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Q.김충열 씨는 어떤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나요?
A.1980년, 라디오를 통해 북한 방송을 듣고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Q.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을 도왔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A.네, 5·18 시민군들이 시종면에 왔을 때 배고파하는 시민군들에게 음식을 사주며 격려했습니다.
Q.김충열 씨는 현재 어떤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인가요?
A.최근 5·18 민주유공자 증서를 받고, 억울한 판결에 대한 명예 회복을 위해 광주지법에 재심을 신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