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린내 속에서 살아남은 이름 없는 수병,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그를 괴롭힌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 제1연평해전 참전 용사의 고통
‘주마등(走馬燈)’이란 말이 있다. 사람이 죽음에 당면한 순간 삶의 중요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는 의미로 쓰이는 표현이다. 떠오르는 잔상이 특정 사건일 때도 있지만, 평소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했던 사람들의 얼굴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성민(가명, 48) 씨의 경우에는 후자였다. 성민 씨는 “총포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리면서도 머릿속에 가족사진처럼 엄마, 아빠, 누나, 그리고 친구들. 하나하나 필름처럼 지나갔다”며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그런 느낌이 아직도 있다”고 말했다. 성민 씨를 처음 마주한 건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였다.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인 그는 1999년 6월 15일 우리 해군과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맞붙었던 날 해군의 참수리 고속정(PKM) 325정에 타고 있었다.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후 지연성 PTSD에 대한 이해와 보훈정책’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 고(故)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씨,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 [이상현 기자]참전용사라는 호칭이 기이하게 여겨질 만큼 국회에서 성민 씨는 위축되어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지고, 정계 인사들이 밝은 얼굴로 서로 인사와 악수를 주고받는 한가운데 앉아있는 그의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승전 영웅이 아닌, 형사 법정의 피고인을 연상케 했다.

PTSD: 전쟁의 상흔, 끝나지 않은 고통
세미나에서 성민 씨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교전을 경험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일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정부 기관으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26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그는 아직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성민 씨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묻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할지 결심이 서지 않았다. 삶에서 가장 힘든 기억을 공유해달라고 부탁할 생각에 스스로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선뜻 질문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기자에게 성민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성민 씨는 “가족들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들한테 저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들. 갑자기 욱하거나 짜증 또는 화를 내는 일이 너무 오랜 시간 반복됐다”며 “아내도, 아이들도 저를 경계한다”고 운을 뗐다.

생생한 기억: 40mm 함포 안, 15분의 지옥
입대하기 전 성민 씨는 운동을 좋아했다고 한다. 유도·태권도·수영·테니스 등 여러 종목을 즐겼고, 사람들과 식사나 술자리도 놓치지 않았던 20대 초반. 한없이 활발했던 성민 씨에게도 여느 청년과 마찬가지로 군에 갈 시기가 다가왔고, 그는 망설임 없이 해군에 자원했다. 성민 씨는 해군 제2함대 325정의 병기병으로 배치됐다. 병기병은 해군이나 해병대에서 무기와 장비의 유지보수, 탄약 관리 등을 맡는 역할이다. 연평도 해상에서 북한군과 교전이 벌어졌을 때 그는 참수리 승선 인원 중 가장 전방인 40mm 함포 안에 있었다. 제1연평해전 당시 해군은 ‘선제사격 금지’라는 교전 수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북한군이 1999년 6월 7일부터 같은 달 15일까지 NLL을 들락거리며 압박해도 해군은 경비정을 활용해 ‘차단 기동’을 하거나, 배로 배를 맞부딪히는 ‘밀어내기’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선 보호를 명분으로 NLL 침범을 반복하던 북한 경비정은 교전 당일에도 ‘밀어내기 작전’에 나선 우리 해군을 향해 돌연 선제사격을 가했다. 오전 9시 30분 해군 338정이 먼저 공격을 받았고, 곧 성민 씨가 탄 325정에도 총알과 포탄이 날아들었다.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 발발 당시 참수리 325정(오른쪽)이 북한 함정을 향해 ‘밀어내기 작전’을 하는 모습. 붉은 색으로 표시된 40mm 함포 안에 성민 씨가 타고 있었다. 사진은 경기 평택시 해군 서해수호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상현 기자]

지옥의 15분: 잊을 수 없는 참혹한 기억
성민 씨는 처절하게 싸웠다. 그가 앉아있던 함포 사수석은 방탄 기능이 없었고, 총알과 포탄 파편 등이 날아들었다. 성민 씨와 함께 40mm 함포를 운용한 임갑종 중사는 철모에 총격당했고, 안지영 325정 정장(대위)도 방탄조끼에 소총탄 4발을 맞았다. 가장 앞자리에 있었던 성민 씨에게 교전 시간 15분은 너무 길었다. 배와 배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이 압사하거나, 바다로 떨어져 숨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해야 했다. 사방에서 피어나는 화약 냄새는 매캐했고, 피비린내는 그보다 더 진했다.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성민 씨는 “당시 선체에 피가 흥건하게 고여있던 게 너무 생생하다”며 “우리가 지하 주차장에 가면 가끔 기름이나 물 같은 게 바닥에 고여 있지 않나. 그런 걸 보면 (피가 고여 있던 게) 바로 생각난다”고 말했다. 살기 위해 싸워야만 했던 성민 씨는 북한 경비정 정장으로 추정됐던 이의 눈빛이 아직도 꿈에 보인다고 했다. “포에 배치되어 있던 북한군들. 한 중학생 정도? 그런 앳돼 보였던 사람들의 눈빛이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 기억이 없었으면 한다”며 숨을 내쉬었다.

PTSD의 그림자: 가위눌림과 악몽, 끝나지 않는 고통
다행히 성민 씨는 부상 없이 전투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보이는 상처가 없다고 해서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PTSD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편견이 가득했던 시절, 성민 씨는 “누구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전투 이후 해군은 그에게 배를 계속 타라는 명령을 내렸다. 성민 씨는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육상 근무를 신청했지만, 이듬해 봄에야 겨우 자리가 났다. 교전을 함께한 전우들과 동떨어진, 처음 가보는 부대에서 그는 만기 전역했다. 대학에 복학해야 해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전역 후에도 성민 씨는 잘 때마다 가위에 눌렸다. “젊을 때는 그렇게 심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친구들하고 술도 먹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또 어떤 날은 혼자 있다 보면 그날이 생각나서 또 가위눌리기도 하고”라며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악몽의 시작: 잠 못 이루는 밤, 끝나지 않는 고통
나이가 들면서 점차 증상이 악화했다. 그럼에도 “내가 겪었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라며 성민 씨는 스스로를 달랬다. 찬물에 개구리를 집어넣고 서서히 물을 데우면 열기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처럼, 성민 씨는 아픈 데도 아픈 줄 모르고 살았다. 제1연평해전 당시 북한 해군이 사용한 포탄과 총탄. 왼쪽부터 25mm 함포용 포탄, 14.5mm 함포용 포탄, 7.62mm 소병기용 총탄. 탄두는 경기 평택시 해군 서해수호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상현 기자]성민 씨가 처음 자신의 병명을 인지하게 된 건 2023년이다. 함께 제1연평해전에 참전했던 한 전우의 장례식을 계기로 오랜만에 전우(참전용사 8명)들과 연락이 닿자 다들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만성 수면 부족, 알코올에 의존한 수면, 가위눌림, 불안감 등. 그는 “잠을 못 잔다. 자더라도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많이 눌린다. 심할 때는 하루에 7번 눌리기도 한다. 가위를 눌렸다가 깨는 일이 반복된다”며 “처음에 잠이 들기까지 과정도 쉽지 않다. 방에 혼자 있으면 두려움이 몰려오거나, 주변을 경계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수면 부족은 PTSD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다. 만성으로 자리 잡으면 우울·불안 증세를 악화시키고, 약물을 쓰더라도 조절이 쉽지 않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처방 약으로 겨우 버티는 성민 씨 역시 효과는 제대로 보지는 못하고 있다. 한 번 두려움이 몰려오면 잠을 잘 수 없다. 성민 씨는 “집에서 가족이 불을 끄고 딱 누우면 뭔가 불안감, 두려움이 갑자기 생긴다.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며 “식구들이 밤에 아직 활동하고 있을 때 꼭 먼저 누우려고 한다. 그래야 불안감이 좀 덜하다”고 말했다.

26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제1연평해전 참전 용사의 고통
제1연평해전 참전 용사 이성민 씨는 1999년 6월 15일 서해 NLL에서 겪은 전투의 악몽에 시달리며, PTSD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정부의 지원 부족 속에서 끊임없이 불안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전쟁의 참혹함과 PTSD의 심각성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가 참전 용사들의 고통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제1연평해전은 언제 일어났나요?
A.1999년 6월 15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발생했습니다.
Q.참전 용사 이성민 씨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A.PTSD로 인한 만성적인 수면 부족, 악몽, 불안감, 가족과의 갈등 등입니다.
Q.이성민 씨는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나요?
A.국가유공자 등록이 되지 않아, 정신적·경제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